Written by 일탈 그 시작은 언제나 뻔해, 이젠 거의 규격화되다시피 한 고백. 애정을 독차지할 권리를 당사자로부터 직접 인가받는 편리함. 설레이던 밤 귀가 후 달콤한 통화. 때 이른 나른한 안도감부터가 이미 이별의 단서. 몹시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꼭 쥔 애들이 느끼는 감정. 이윽고 부풀어 오른 포만감으로 그대 진심어린 말도 질리고 마는 걸. 껍질만이 남은 미소 속 빈자리를 억지로 마주앉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옛 친구의 번호, 회포를 풀자는 빌미로 전화 걸어. 그렇게 만난 포차 구석에서 서로 하고팠던 말만 다그쳐댔고 결론은 항상 참 시간이 빨라, 또 보자는 약속 차라리 하지 말자. 며칠 안 돼 네가 다시 찾을 그녀의 품 당분간 따듯할 테니까. 그렇게 비참한 말은 하지 마. 꼭 모든 게 그런걸 아니니까. 좋은 추억은 힘이 되지 못해도 미소를 안겨줄 수 있겠지. 사랑과 우정 사실 발음하기조차 약간은 부끄러워 툭하면 고귀한 감정인척, 하지만 실상 대부분 본질적으로는 고독 또는 집착 너무나 빨리 다하는 약발 거창한 이름 따위 어울리지 않아 항상 내 옆에서 위로해 줄 뭔가가 필요해서 이젠 눈 좀 낮추기로 했지. 즐거운 기억보단 상처를, 좋은 사람보단 악연을, 평소엔 아주 얌전히 머릿속에 아껴둔 채 가끔 꺼내봤지, 상황이 나빠졌을 때. 무기력한 날 흥분하게끔 하고, 욕설이라도 좀 뱉고 나면 한층 단단해지곤 했던 행동 양식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 패턴같이. 지금껏 내가 이룬 것 중 태반을 지탱해 준 게 사실은 가장 싫어했던 이름. 학창 시절, 약점을 쥐고 놀리던 그 사람에게만은 지지 않기 위한 시도. 유치하지만, 이런 게 바로 나지. 자꾸 미끄러지는 날 부여잡는 방식. 이전엔 그저 거부하기 바쁘던 증오의 대상들에게 이젠 머리 숙여