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00:01.19]누나, 어제 형부에게 연락이 왔어. [00:03.44]인영이 출산했다고. [00:04.92]그 말에 감이 잘 안와서 잠시 머뭇했는데, [00:08.00]예쁜 딸을 낳아서 기쁘다는 형 [00:10.43]부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어. [00:12.09]축하해 누나. [00:13.27]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, [00:14.94]아직은 낯선 조카님께 [00:16.47]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고 [00:18.42]내가 당신의 삼촌이라며 안아주면 [00:20.30]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봤어. [00:23.23]아,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[00:25.52]인영인 당연히 고달팠던 [00:26.98]누나 인생의 낙이라서 [00:28.89]공부 잘 하고 예쁜 딸로 키우고 싶은 욕심. [00:31.26]나도 이해해. [00:32.54]아마 지금쯤 몹시 바쁜 스케줄로 [00:35.38]육아책 이라든지 아니면 [00:37.49]자기 딸에게 입혀줄 옷을 고르며 [00:39.86]즐거워하고 있을 거야. [00:41.20]그런데 있잖아. [00:42.39]이것만큼은 잊지 않아줬으면 해. [00:44.90]인영이를 키울 때, [00:46.28]그저 누나 욕심에서 비롯된 [00:48.16]강요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. [00:50.02]이를테면, 인영이를 늘 옆에 끼고서 [00:52.89]누나의 못 이룬 꿈이나 능력을 바라는 것. [00:55.81]행여나 흥미 없어하는 딸을 울려가면서 [00:58.74]학원에 굴려댄다는 [01:00.35]말은 들려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래. [01:02.70]새로운 생명과의 성장을 기원하며. [01:05.27]현명한 어머니인 누님께. [01:07.27]동생 이삭 [01:29.70]누나 그저께 인영이를 만났어. [01:32.25]아니 대체 뭐가 부족해 과외를 4개씩이나 해? [01:34.97]이른 아침부터 무섭게 인영일 깨워 [01:37.39]학원버스에 태워 보내는 누나 모습이 뻔히 보여. [01:40.14]하...그늘진 인영이 얼굴도 말야. [01:42.61]'넌 몰라서 하는 얘기다, [01:44.55]요즘 애들이 어떤데. [01:45.87]이렇게라도 안하면 남보다 뒤쳐질까 걱정돼. [01:48.57]보니까 지금 시작하는 게 빠른 게 아니더라 얘.' [01:51.41]그게 정말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맘일까? [01:54.41]아님 혹시 누나 욕심을 채우는 판단일까? [01:56.96]′그저 답답하니까′ 라고 말하는 당신의 어께는 [02:00.29]왜 그렇게 무겁게 보이는 건데 [02:02.26]정말 누나 뜻대로 인영이가 잘 돼서 [02:05.10]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합격했어. [02:07.80]근데, 그 다음은? [02:09.19]누나의 마흔은 딸자식을 [02:11.15]향한 희생으로 남김없이 소멸됨으로. [02:13.66]이런 당신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되물어 [02:16.24]훗날에 내 아이에게 [02:17.65]어떤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걸까 [02:19.95]무조건 많은 걸 강요하는 가르침이 [02:22.37]옳지 않은 길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[02:25.65]또 내 욕심을 따라서 [02:27.10]자식을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[02:29.82]때때로 내 바램대로 커주지 않는 [02:32.83]자식에게 실망할까봐 [02:34.21]나도 그게 괴로워 [03:19.78]아, 누나. 오늘 같은 날 [03:21.34]누나 곁에서 함께 울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맘뿐야. [03:24.67]내일, 새벽 기차가 이 곳으로 도착하는 대로 [03:28.31]출발할 테니까 영안실에서 만나자 [03:30.54]많이 아프지? 아직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[03:34.34]누나 까무러친 얘기는 들었어. [03:36.06]형부 목소리도 말이 아니더라. [03:38.20]다들 어서 기운들 차려야 할 텐데 [03:40.18]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쯤 흘렀네. [03:43.17]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인영이를 건네받던 그 때, [03:46.78]아.. [03:47.58]인영이가 성적표를 건네받던 그 때와 [03:49.71]모습이 겹쳐지는 건 대체 왜야.. [03:52.72]아마 인영이가 제일 힘들었을 거야 [03:55.55]세상의 요구에 짓눌려 비틀어 쓴 서약 [03:58.10]반 친구들보다 점수가 뒤떨어져서야 느꼈겠지 [04:01.63]′난 세상 끝으로 미끄러지는 거야!′ [04:03.95]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노후 [04:06.90]평안이란 허울을 뒤집어 쓴 그 모두 [04:09.48]그 모든 관념 속에 눈이 먼 채 [04:11.61]우린 언제나 같은 그림만을 바라보면서 재촉해 [04:14.62]인영이가 그리던 꿈은 무엇이었을까? [04:17.42]어쩌면 단지 숨을 쉬고 싶었을지도 몰라 [04:20.03]오우, 누나 이제 그만해도 돼 [04:22.71]서로를 지치게 만든 세월을 다 떠나보내 [04:25.38]부질없는 꾸지람에 울지 않던 인영이 [04:28.86]옥상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인영이 [04:31.48]누나의 인영이 또 우리의 인영이 [04:34.43]우리의 인영이 우리의 인영이