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기억이 온전하다는 건 어쩌면 기적을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 곳, 내가 서 있는 여기 혜화동사거리 혜화역까지,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걷는다 가끔, 그런 류의 옷가지들 - 보라색 주름 스커트, 같은 색의 스웨이드 신발 - 을 보게 되면 어렴풋이 기억나는, 그 여자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관한 사물조차 때론 의심스럽다 과연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을지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, '혜화동 사거리'라는 표지가 없으면, 과연 나는 어디를 어떻게 알고 걷는 걸까? 나는 이 거리를 왜 걷고 있는 걸까?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기억이 온전하다는 건 어쩌면 기억을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